영화의 수록곡은 하나같이 다 좋았다. 근데, 노래만 좋았다. 엄마는 영화가 아니라 그냥 그 노래가 마음에 들었던 게 분명하다고 나는 자신 있게 결론 내릴 수 있다. 형이 뻔한 영화라고 했던 이유를 나는 절절하게 느끼는 중이었다. 세상 간사한 것이 사람 몸뚱아리랬나. 배부르고 푹신한데 살짝 닿은 옆 사람 체온은 기분 좋게 따끈하지, 거기다 아릿하게 술기운까지...
필라프는 볶음밥이고 뇨끼는 감자 수제비 같은 거고 파르펠레는 파스타의 일종이란다. 여기서까지 볶음밥을 먹어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아서 일단 필라프는 선택지에서 지웠다. 육류를 하나 추가하고, 왠지 모르게 파스타는 하나 시켜야 할 것 같아서 넣은 다음 뇨끼가 궁금해서 그것도 먹기로 했다. 이탈리아 사람들도 감자 수제비를 먹나. 신기하잖아. 그리고 메뉴 선정...
형의 다부진 손목을 따라 핸들이 돌아가면서 묵직하게 검은 차가 좁은 골목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핸들에는 나에게도 익숙한 자동차 회사의 로고가 떡하니 박혀있었다. 전의 차는 이석원이 비싼 거래서 비싼 줄 알았지만 이건 외제차의 대명사 같은 차였다. “또 손이 잘생겼어?” “네?” “예쁘게 하고 오래서 예쁘게 하고 왔더니 나는 안 보고.” 이 형 오늘 왜 이러...
19. 호기롭게 지르긴 했는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밥 한 번 먹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싶었지만, 그렇게 말하던 순간에 나는 형과 나 사이의 크고도 넓은 여러 가지 차이에 대해 망각하고 있었다. '기대한다?' 가게가 아니라 밖에서 따로 만나 밥을 먹자는 사실을 이해한 형은 제안이 마음에 드는지 그렇게 말했다. '기대하실 것 까지는….''기대해야지...
18.매니저님은 금세 가게를 떠났고, 나는 형이 사장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바로 그 테이블에 꼭 그 날처럼 앉았다.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선고를 기다리며 나는 단정하게 손질 된 형의 길쭉한 손가락만 쳐다봤다. 그런데도 시선이 내 이마의 반창고에 와 있다는 게 따가우리만치 잘 느껴졌다. 인간에게는 육감이 존재하는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가시방...
17.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하는 교수님의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책상 오른쪽 위에 뒤집어 두었던 핸드폰부터 손에 들었다. 수업시간 내내 흘겨본 제조사 로고는 이제 안보고 그리래도 그릴 것 같다. 급한 마음에 쥐었던 펜도 놓지 않고 핸드폰 액정을 켜는데, 당연히 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빨간 메시지 알림 뱃지가 없다. 아직 못 보셨나? 하고...
16. 상처 부위에 물이 닿지 않게 조심하고, 어지럽거나 메스껍다면 휴식을 취하고 심해지면 병원에 내원하라는 주치의 선생님의 일장연설을 들은 나는 예상대로 곧바로 퇴원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환자복을 갈아입고, 간소하게 짐도 챙기고. 거기까진 좋았는데 문제는 퇴원수속이었다.“수납 했어.”“네?”“수납 다 했다고.”지익 하는 소리와 함께 키오스크가 53번...
15. 우리 사이에 흐르던 분위기야 어찌 되었건 나는 결국 2인실의 창가 자리로 옮겨졌다. 그것도 밤 열두시가 다 된 시간에.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형의 유난 덕이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소음이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내 신경이 아주 많이 곤두서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높은 대학병원 창문 밖으로 눈높이가 나란한 수많은 빌딩과 주황색 가로등이 반짝였다. ...
14. 울다가 코 먹다가 이제는 형, 형 하면서 배시시 웃는 배현우랑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침대를 둘러싼 커튼 너머 응급실은 분명 수십 가지 소리들로 차고 넘쳤는데도 나는 정확하게 형의 목소리를 찾아 들을 수 있었다. 마치 세상에서 내가 아는 소리가 그것뿐인 것처럼. 이상한 감각이었다.“현우야 이제 가도 돼.”“저 안 가요....
13. 다섯 명이 둘러앉은 테이블이었다. 반 농담으로 강아지 망아지 송아지를 찾아대는 눈빛에 적대감이 흘렀다. 사람들 사이 간격이 좁은 과 주점 특성상 사고가 나면 전혀 관계 없는 사람들 까지 다칠 위험이 있었다. 바로 뛰어갈 수 있는 자리에 서서 제일 얼굴이 벌건 남자를 곁눈질로 주시했다. 오래지 않아, 덜그럭 요란한 소리가 나면서 마주보고 있던 남자 둘...
12 "아무것도 아니에요."나는 냉큼 대답했다. 찔러보더라도 이렇게 급하게는 아니지! 그러나 형은 나이를 헛으로 먹지 않았고 그런 형의 옆에는 이석원이 있었다."진짜로 아무 것도 아녜요 정의찬씨?""아무겁니다, 형님."이석원을 향해 눈을 부라려봤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 이건이 형이 카운터에 슬쩍 기댄채로 묻는다."나 누구 말 들어요?""…저요."나의 체념을...
11. 나는 순간 혹 했다. 솔직히 하루 자 보니까 좋긴 하더라. 욕실에 들어가면 공기가 데워지고 보일러를 돌리지 않아도 따뜻한 물이 콸콸 나왔다. 자고 가라는 형의 유혹은 꽤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해야 할 일이 있었다."무슨 외박을 이틀을 해요."나는 고개를 저었다. 혼자 살면서 방탕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나름의 원칙이 필요했다."너 그거 다 끓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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