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은 그런 말 안 할 줄 알았어요.""그런 말 어떤 거.""오늘부터 1일, 그런…거.""왜?""…유치하니까?""연애는 원래 유치한 거야."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우리는 손을 한 번도 놓지 않았다. 형의 엄지 손가락은 내 손등을 부드럽게 쓸었고, 누군가에게 이렇게 오래 손을 잡혀 본 것이 처음이라 어색한 나의 움직임을 장난스레 붙들어맸다. “그러니까 너 ...
같이 살 때에도 많은 말을 하고 살진 않았던 것 같은데, 다시 만나니 할 말이 참 많았다. 문제는 그렇게 말을 하다가 이건이 형의 문자를 제 때 보지 못했다는데 있었다. 경준이 형이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집어든 핸드폰에는 어디로 가면 되냐고 묻는 문자가 이미 오래 전에 날아와 있어서, 나는 형의 기분이 많이 상하지 않았기를 바라며 전화를 걸었다. - 다 ...
할 일도 없어졌겠다, 나는 형에게 손을 붙잡힌 채로 경준이 형 이야기를 했다. 하다하다 안 되어서 군대로 도망가다시피 하기 직전의 일인데도 말은 어려움 없이 나왔다. 시간을 따라서 기억은 미화되고 고통은 풍화된다더니 의외로 자잘하게 웃었던 기억도 나서 그게 좀 새삼스러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래서? 하는 추임새를 몇 번 빼고는 가만히 듣기만 한 형은 '그래...
경준이 형에게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약속을 주말로 미루어야 할 것 같다는 메시지를 겨우 보낸 것 외에는 줄곧 꺼져있던 핸드폰을 켰다. 뭘 어떻게 알았는지 생사여부를 묻는 이석원을 시작으로 수영이, 지윤이, 현우는 물론이고 매니저님까지 저마다 내 안부를 걱정하는 글자들이 화면 한 가득이었다. 답장을 꾹꾹 눌러 보내는데 아픈 것도 다 나았으면서 괜시리 명치 끝...
내가 이렇게 잠이 많았나 싶을만큼 자고 또 잤다. 눈을 감고 있는 시간에 비례해 호된 몸살도 서서히 수그러들었다. 내가 자다가 깨서 죽을 먹고 약을 먹고 링거를 맞으며 다시 자기를 반복하는 동안 이건이 형은 집에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내 옆에서 보냈다. 화장실 가는 것만 빼면 이불 바깥으로 발가락 하나 내 놓은 기억이 없었다. 덕분에 손등에 새파랗게 꽂혀있...
크게 후회할 일이 없는 인생이었다. 후회할 짓은 애초에 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살았다. 내 선택은 항상 틀리지 않았다. 학업도 일도 연애도. “강희찬.”- 바빠. 빨리 말해. 그런데 후회했다. “합의금, 조정 끝났나?”- 의찬 학생 건? 아직. 저쪽에도 변호사가 붙었는데, 건수에 비해 좀 피곤하게 됐어. 왜? 그것도 말을 내뱉는 순간 곧바로. ...
잠이 든 건 아침에 가까운 깊은 새벽이었지만 눈은 비교적 일찍 뜨였다. 나는 어제의 일을 되짚어 생각해보았다. 술을 퍼먹고 굴렀으면 상처라도 남았을 것이고 주먹질을 했으면 멍이라도 들었을 텐데, 내게는 어제 있었던 일의 조각 끄트머리 하나도 남은 것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현실감 없이 멍했다. 어쩌면 집 비워달라는 것부터가 다 꿈이면 좋겠다. 뭐 그런 생각을...
전화기 너머에서 왜 갑자기 말이 없느냐고 다그치는 아저씨의 고함소리가 쉴새없이 넘어와 좁은 라커룸을 울렸다. 형은 멈춰 선 그 자리에서 발 끝 하나 움직이지 않은 채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전화를 끊었다. 죽은 듯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매니저님이, 분명히… 형은 바빠서, 이번 주 안에는 여기 못 올 거라고……."형,"무슨 말을 쏟아내고 있었더라. 돈이 없...
“여보세요.”- 의찬학생. 방은 알아봤어?“알아보는 중이에요.” 어젯 밤까지 문자로 독촉을 하던 아주머니는 이제 전화로 노선을 선회한 모양이었다. - 빨리 좀 알아봐줘, 응? 이사비용까지는 내가 대 줄테니까… 대학생 자취방 이사비용이래봐야 포터 용달차 하나 부르면 땡이었다. 계약 위반을 한 게 저쪽이 먼저니 미안한 기색을 담뿍 담은 말투이긴 했으나 내용을 ...
“우리 어디가요?”“밥 먹으러.” 내 물음에 형이 짧게 대답했다. 그걸 물어본 게 아닌데. 우리가 지금 밥을 먹으러 가는 중이라는 건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고, 내가 궁금한 건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웃고 있는 걸 보니 도착하기 전까지 목적지를 알려줄 생각은 없나보다. 이미 잘 아는 곳인지 네비게이션도 조용하다. 하긴...
<언넺><언제> 네가 보기에도 상황이 어이가 없냐. 득달같이 이어지는 글자는 두 글자도 제대로 못 치고 오타율이 5할에 육박한다. '학기 끝나는 대로 빼래' 하고 답을 보냈다. <미친><개매ㄴ><방빼라는 말을><지금하냐> 그래 나도 그것이 알고싶다. 한숨이 푹 나왔다. 때때로 사람은 그것이 나...
확인이 밀려있는 과 공지방과 이건이 형의 메시지 사이에 떠 있는 집 주인 아주머니의 프로필 사진이 낯설다. 주인 아주머니가 학교 근처 원룸계의 큰 손이라는 부동산 아저씨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세입자 대상의 공지는 거주자 중에서 뽑은 관리자가 전달하곤 했다. 그건 곧, 아주머니의 이 연락이 수도세가 많이 나왔다거나 두꺼비집이 내려갈 위험이 있으니 냉방사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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